국제갤러리
1982년 설립된 국제갤러리는 인사동을 거쳐 1987년 소격동으로 이전된 후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화랑으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동시대 국내외 미술작가들의 주요 작품과 흐름을 소개하고 미술문화와 시장은 두루 통합하는 등 미술은 물론 문화까지 아우르는 허브의 역할을 충실히 해오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 현대미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해외작가들의 개인전을 연달아 개최하며 국내 미술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모한 한편 한국작가들의 전반적인 작업 활동 및 국제무대 진출을 위한 통로와 지지기반 구축에 힘써왔습니다. 이 밖에도 미술시장의 최전방에 선 세계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인 아트 바젤에 1998년부터 꾸준히 참가하는 등 그 선두에서 다양한 해외 컬렉터들과 미술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국미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알려왔습니다. 특히 국제갤러리는 한국미술의 역사성과 의의, 그리고 한 시대인으로서의 인생을 작업으로 승화시킨 유수의 단색화 작가들을 발굴함으로써 유의미한 단색화 담론을 세계 미술계에 소개해왔습니다.
<복선을 넘어서 II>
국제갤러리는 2023년 2월 9일부터 3월 19일까지 홍승혜의 개인전 <복선을 넘어서 II (Over the Layers II)>를 개최합니다. 1997년부터 컴퓨터를 사용해 작푸믈 제작해 온 홍승혜는 윈도우 기본 내장 프로그램으로 깔려 있는 그림판에서 시작해 포토샵을 주로 운용하면서, 이 세상을 관통하는 시각적 원리와 규칙을 상정해 픽셀로 구성된 자신만의 무대를 꾸준히 확장해 왔습니다. 방법론이 곧 작업의 내용으로 귀결되곤 하는 작가에게 있어 지난 작업을 돌아보고 고찰하는 것은 또 하나의 작업방식이 됩니다. 개인전 제목으로도 쓰인 바 있는 '회상'은 홍승혜의 작업 방식을 관통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론인 셈입니다. 끝없이 자신의 작업을 복기하며 과거 작업을 재료 삼아 새로운 층위를 쌓아가는 그에게 시간의 흐름은 가장 풍성한 자산입니다. 홍승혜 작가는 1997년 국제갤러리 개인전 <유기적 기하학>을 시작으로 컴퓨터 픽셀의 구축을 기반으로 한 실재 공간의 운영에 깊은 관심을 보여 왔습니다. 평면에서 벗어나 시공간의 레이어를 담고자 했던 2004년 국제갤러리에서의 전시의 후속 편으로 구상된 본 전시에서 작가는 네모의 그리드를 탈피합니다. 래스터 파일을 생산하는 포토샵에 더해 벡터 문법의 일러스트레이터를 새롭게 구사하게 되면서 홍승혜의 증식이 다시 한번 새로운 차원의 확장을 거친 셈입니다. 픽셀로 깨질 염려 없이 축소와 확대의 저변을 넓히고, 픽셀 기반의 틀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모양새의 도형을 그리게 된 작가가 근 20여 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그새 폭발적으로 증식한 홍승혜 작가의 레이어들이 만드는 무지개 너머의 세상으로 관람객을 안내합니다.
자신의 작업을 '유기적 기하학'이라 설명하는 작가는 그 표현이 내포한 모순을 앞장서 피력해오기도 했습니다. 본디 정지된 순간의 절대적으로 안정된 상태인 '기하학'앞에 변화하는 운동의 조건을 칭하는 '유기적'이란 수식어는 모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모순을 아우르며 매 전시 환경에 맞춰 자신만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내는 작가는 모순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 그 모순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모순의 양 극단을 포용하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예기치 못한 조건들을 자신만의 '이상향'을 구축하는 규칙으로 삼는 데서 홍승혜는 비로소 예술의 의의를 찾습니다. 예술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힘, 예술이 인간의 정신에 자유를 부여할 수 있는 힘에 흥미를 느끼는 작가에게 결국 유기적 기하학의 논리란 근원적인 예술론이자 삶의 방식이기까지 한 셈입니다. 이렇듯, 1939년 빅터 플레밍 감독의 <오즈의 마법사> 영화 주제가 'over the rainbow'에서 착안한 전시 제목은 무지개를 구성하는 여러 겹의 레이어를 지시할 뿐 아니라 노래 가사가 읊듯 '무지개 저편에 날고 있는 파랑새'를 좇는 여정의 서막이기도 합니다.
작가 홍승혜
홍승혜 작가는 컴퓨터 화면의 기본 단위인 사각 픽셀을 조합, 분해, 반복하여 유기적으로 역동적인 이미지를 증식시켜왔습니다. 모니터에서 탄생한 이러한 이미지들은 점차 실재의 공간으로 나와 평면, 입체 애니메이션, 가구, 건축으로 확장되며 조형적 변화를 거듭합니다. 이렇듯 공간의 구축으로서의 추상에 대한 일관된 관심을 바탕으로 작가는 작품의 내적 구조와 작품이 위치할 건축 공간과의 관계를 탐색하며 기하학적 추상이 실천된 현실-장소를 만들어냅니다.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난 작가는 1982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로 건너가 1986년 파리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986년부터 현재까지 30여 회의 개인전을 선보였습니다. 단체전으로는 광주, 부산, 서울 미디어시티 등 국내 주요 비엔날레를 포함,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일민미술관 및 프랑스 파리 한국문화원, 이탈리아 볼로냐 현대미술관 등 다수의 국내외 주요 기관 전시에 참여했습니다. 주요 작품 소장처로는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성곡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등이 있으며 1997년 토탈 미술상, 2007년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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