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현대
1970년 인사동에 첫발을 내디딘 갤러리현대는 고서화 위주의 화랑가에 현대미술을 선보이는 파격적 행보였으며 미술계의 흐름을 선도해 왔습니다. 이제는 국민화가로 평가받는 이중섭과 박수근의 작품이 갤러리현대를 통해 세상에 빛을 보았습니다. 그 외에 추상 미술의 거장들과 함께 전시를 개최하며 단색화 열풍이 일기 오래전부터 추상미술의 저변 확대에 기여했습니다. 1980년대 이후 국제 미술계의 흐름에 발맞춰 해외 거장들의 미술관급 전시를 열며 미술계 안팎의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1987년부터 한국 갤러리 최초로 해외 아트페어인 시카고 아트페어에 참가하여 한국 미술을 해외 무대에 소개하는 선구적 역할을 했습니다. 서울 삼청로에 갤러리현대와 현대화랑이라는 두 전시장 이외에, 뉴욕 트라이베카 지역에 한국 미술을 소개하는 플랫폼인 쇼룸도 운영 중입니다.
정주영 작가
정주영작가는 한국 미술계를 이끄는 중견 화가로 '산의 작가'로 알려졌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작가는 산의 풍경을 캔버스로 옮겨 그렸습니다. '산'은 서양회화에서 풍경화, 동양회화에서는 산수화로 불리는 장르의 대표적인 공통 화제 중 하나로, 정주영 작가에게 풍경화는 회화의 방법론을 실험하기 가장 좋은 소재입니다. 작가는 단원 김홍도나 겸재 정선의 산수화 일부를 차용해 대형 캔버스로 옮기는 작업을 시작으로 북한산, 인왕산, 도봉산, 그리고 알프스 등의 국내외 산을 테마로 삼고 산의 일부나 봉우리, 바위의 면면을 캔버스에 담았습니다. 그는 산을 매개로 한 일련의 연작을 통해 풍경에 관한 인식론적 투사나 그 배경에 관한 문화사적 사고를 드러내고자 하였습니다. 산 연작에 관해 작가는, "관념과 추상을 넘어선 감각과 체험의 구체적이며 원초적인 차원으로 우리 인식의 뿌리를 잡아 이끄는 풍경의 초상"이라고 설명합니다. 정주영 작가가 그려낸 산 풍경은 진경과 실경, 관념과 실재, 추상과 구상 사이에 놓인 이중적인 '틈' 회화의 세계를 제시한다고 평가받습니다.
<그림의 기후> 전시 소개
갤러리현대는 정주영 작가의 개인전 <그림의 기후>를 오는 2월 15일부터 3월 26일까지 개최합니다. 정주영 작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 풍경에 대한 해석과 동시대적 의미를 회화 매체로 탐구해왔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알프스의 산 풍경을 담은 연작을 비롯해, '기상학'을 주제로 새롭게 선보이는 회화 작품들이 대거 공개됩니다.
전시 <그림의 기후>의 출발점에는 <알프스> 연작이 있습니다. 작가는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거대하고 뾰족한 봉우리들과 빙하가 어우러진 일대를 2006년 답사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 촬영한 사진 자료와 자신의 기억을 기반으로 2018년부터 <알프스> 연작을 제작했습니다. 그는 지각변동과 침식작용 끝에 생겨난 절묘한 형상과 마그네슘, 칼슘, 철 등이 함유되어 있어 붉은색을 띠는 암석을 그리며, 산의 원형적 풍경을 사람의 얼굴과 손, 다리 등 신체의 일부를 연상하게 하여 보는 이에게 인식과 감각의 전환, 나아가 내면을 투영하도록 안내합니다. 알프스에서 마주한 웅대하고 낭만주의적인 하늘 풍경은 '기상학'을 주제로 새롭게 선보이는 <M> 연작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정주영 작가는 <알프스> 연작을 준비하면서 계절과 시간을 나타내는 하늘에 처음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작가에게 변화의 상태가 더 긴박하게 다가왔고, 예상치 못한 사고의 전환을 갖게 되었습니다.
<M> 연작에서 작가의 시선은 산 너머의 하늘이라는 공간으로 확장됩니다. 하늘, 구름, 일출, 일몰 등 고정불가능한 자연의 상태가 캔버스에 포착됩니다. 하늘의 경계 없는 무한에 가까운 공간은 인간의 어떤 욕망이나 영적 숭고함을 담보하는 장소이며, 구름은 기의와 기표, 실체와 기호 사이에서 표류하는 혼돈의 대상이자 신비와 무한에 대한 표현입니다. 실체가 없지만 우리 눈앞에 분명히 펼쳐지는 이 흐릿한 풍경들은 정주영 작가 특유의 회화적인 동시에 선묘적인 필법으로 드러납니다. 계속 형태를 바꾸는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를 띠는 하늘의 풍경들은 수많은 색의 레이어가 쌓인 다채롭고 몽환적인 색채의 그라데이션으로 재현됩니다. <M> 연작은 감정과 기분, 행복과 슬픔, 생과 사 등 고정될 수 없고 영원히 순환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과 대자연을 은유하며 감상자 내면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그림의 기후> 전시를 토해 우리는 정주영 작가가 산과 바위에서 물과 안개, 구름과 하늘의 영역으로 회화의 공간을 확장해 나간 시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고정된 대상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재현 불가능한 '기후'를 그리며 '그림'의 새로운 변화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정주영 작가의 풍경 연작은 스마트폰과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는 것이 일상인 동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시금 불가해한 하늘의 공간을 보게 함으로써, 가장 원형적인 풍경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명상적인 시간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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